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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고대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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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 :11-07-2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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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중국 역사상 후한(後漢)이 멸망한 다음 해부터 수(隋)의 문제(文帝)가 진(陳)을 멸망시키기까지(221∼589)의 시대.

진(秦)·한(漢)과 수(隋)·당(唐)의 두 통일기를 잇는 정치적 분열시기이고, 문화적으로는 다양하면서도 통일성이 있는 특유한 성격을 지닌 시대이다. 위(魏)는 촉(蜀)·오(吳)와 더불어 삼국이라 하며, 진(晉)은 뤄양[洛陽]에 도읍을 한 서진(西晉)과,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난으로 중원(中原)을 잃고 건강(建康:吳의 建業, 지금의 南京)에 도읍을 한 동진(東晉)으로 나뉜다. 그 뒤 송(宋)·남제(南齊)·양(梁)·진(陳) 등 4국의 남조(南朝)가 건강에 도읍했으며, 이들 남조와 오(吳)·동진(東晉)을 합하여 육조(六朝)라 하는데, 이 시대 전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강북(江北)의 분열을 수습한 서부 선비탁발부(鮮卑拓跋部)의 북위(北魏:後魏·元魏)가 439년 태무제(太武帝) 때 강북을 통일하였다. 6세기 중반 북위는 동위(東魏)·서위(西魏)로 갈리고, 이어 동위는 북제(北齊), 서위는 북주(北周)가 되었으며, 후량(後梁)·진(晉)과 더불어 잠시 이들 4국의 대립이 전개되었다. 그뒤 북주가 북제를 멸망시켜 북조를 통일하였고 북주를 찬탈한 수(隋)에 이르러 남북조시대는 끝이 났다. 이로써 후한 멸망 이후 350여 년 동안 위(魏)와 진(晉)을 정치기반으로 한 남북조의 분열시대는 종지부를 찍고, 수·당·송(宋)·원(元)·명(明)·청(淸)으로 이어지는 통일왕조시대를 맞게 되었다.

◑ 위·진(서진, 동진)

위진남북조시대(魏晉南北朝時代)의 중국 왕조.
호족 출신 사마의는 조조 이래 위나라에 벼슬하여 249년에는 승상이 되고 이후 그의 아들 사마사. 사마소 등이 사실상 위나라의 정권을 장악하였다. 사마소는 촉한을 토멸한 공로로 진왕(晋王)이 되었으며 그의 아들 사마염은 265년 위나라로부터 선양을 받아 서진왕조를 세웠다.
무제 사마염은 귀족의 특권을 옹호하고 정치를 안정시켜 나갔다. 즉위 초에는 검소한 생활로 모범을 보였으나, 점점 사치와 방탕에 빠지자 귀족들도 다투어 사치와 부를 마치 무슨 경쟁이라도 벌이듯 과시하였다.
특히 천하의 부호 석숭과 왕개의 사치 싸움은 당시의 부패상을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다. 무제가 죽고 혜제가 즉위하자 국정은 점점 문란해지고 제실의 울타리로서 강력한 군사력을 장악하고 왕들이 난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역사상 팔왕의 난이다. 이 팔왕의 난은 무제의 황후 양씨 일족과 혜제의 황후 가씨 일족들의 권력 다툼으로 비롯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여남왕, 초왕, 조왕, 제왕, 장사왕, 성도왕, 하간왕, 동해왕의 팔왕이 16년에 걸쳐 싸움을 벌여 마침내는 영가의 난이 일어나게 되었다.
결국 팔왕의 난이 영가의 난을 부르고, 영가의 난이 서진을 멸망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중국 북부에서 오호 십륙국 시대의 막이 열리게 되었다.
팔왕의 난이 일어나자 당시 이미 중국 내륙에 많은 이주민을 보내고 있던 유목 민족은 무력 침략을 시작하였는데 산서 지방의 남흉노의 수장 유연이 자립하여 황제라 칭하고 북한을 세웠다. 그의 아들 유총이 311년 낙양을 함락시키고 영가의 난을 계기로 서진의 회제를 사로잡았다. 이어 장안에서 즉위했던 민제도 316년 북한의 유요에게 사로잡힘으로써 서진은 52년만에 멸망하였다.
이보다 앞서 팔왕의 난이 한창일 때 왕실의 일족인 사마예는 건업(남경)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왕도 등 중원의 호족과 토착 호족들의 추대를 받아 317년 동진을 세움으로써 중국 북부의 오호 십륙국과 남북으로 대치하는 남북 분열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진나라는 280년에 오(吳)나라를 평정하여 3국을 통일하고, 점전법(占田法)·과전법(課田法) 등의 토지제도와 세법(稅法)인 호조식(戶調式)을 공포하였다. 2대의 혜제(惠帝)는 무능하여 귀족관료는 9품관인법(九品官人法:九品中正法)에 따른 문벌주의에 안주하고 소외된 하급 사인(士人:寒門)의 일부는 제실(帝室)의 일족인 여러 왕의 심복이 되어, 290년 8왕의 난을 일으켰다. 또 이 반란에 종군한 흉노 등 변방의 여러 민족들도 자각하기에 이르러, 민족의 독립을 목표로 궐기하여 영가(永嘉)의 난을 일으켰다. 이로써 뤄양과 장안(長安:西安)은 외방 민족에게 파괴되고 311년에는 3대의 회제(懷帝)가 살해되었으며, 316년에는 4대의 민제(愍帝)도 잡혀 서진은 멸망하였다. 이에 앞서 오(吳)나라의 옛 도읍지 건업(建業:南京)에 있던 서진 왕족의 사마 예(司馬睿:元帝)는 뤄양과 장안이 함락되자 건업을 도읍으로 삼아 동진을 세웠다. 황허강[黃河] 유역에서 남쪽으로 이주한 왕도(王導) 등 귀족은 강남(江南)의 토착 명족(名族)에 비해 우위를 차지하면서 이들과 화합하여 귀족제의 국가를 이루어갔다. 또한 북방으로부터의 인구 유입에 따라 양쯔강[揚子江] 중 ·하류 유역의 개발이 진전되어 장원(莊園)도 형성되었다. 문화면에서도 왕희지(王羲之)의 글씨, 고개지(顧愷之)의 그림, 도연명(陶淵明)의 시 등 훌륭한 명사들이 나와 좋은 작품들을 남겼다. 그러나 동진
의 제권(帝權)은 약해서 장군들의 정권싸움이 끊이지 않다가 419년 무장(武將) 유유(劉裕)가 공제(恭帝)로부터 선위(禪位)받아 송(宋)나라를 일으켰으나 얼마 가지 못하고 멸망하였다.

◑ 남북조시대

진(晉)나라와 수(隋)나라 중간시대에 해당하며, 이 동안 중국은 남북으로 분열되어 각각 왕조가 교체해서 흥망하였다. 남조는, 한족(漢族) 왕조인 송(宋)나라의 문제(文帝)에서 시작되어 제(齊)·양(梁)·진(陳)의 4왕조가 교체하여 나라를 세웠다가, 589년 진이 수의 문제(文帝)에게 멸망될 때까지를 가리킨다. 북조는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혼란을 수습한 북위(北魏)의 태무제(太武帝) 때부터 시작되어, 이 북위가 동위(東魏)와 서위(西魏)로 분열하고 동위는 북제(北齊)에게, 서위는 북주(北周)에게 교체되었다가 북주가 북제를 멸망시키고 한때 화북지역을 통일하였으나, 얼마 못가서 외척 양견(楊堅:文帝)이 제위를 양위받고 건국한 수가 남조 최후의 왕조인 진을 멸망시키고 중국천하를 통일한 때까지를 말한다.
이 시대의 정치적 특징으로는 남조에서는 귀족정치의 번영이었고, 북조에서는 군주권의 강화였다고 할 수 있다. 남조의 귀족은 구품중정법(九品中正法)을 이용하여 항상 고급관리의 지위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왕조의 교체는 군사권을 장악한 무관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북조의 군주는 선비족(鮮卑族) 출신의 탁발씨(拓跋氏)로서, 군주권강화를 위하여 지배종족인 선비를 모든 군사담당자로 구성하였으며, 호적을 정비하여 인보제(隣保制)와 삼장제(三長制)에 의해서 체제를 지탱하였다. 또한 균전법(均田法)이 처음으로 시행되었으며, 부병제(府兵制)도 채용하였다. 이 북조의 군주권 강화를 위하여 실시된 정치기구가 뒤에 수 당(唐) 두 제국의 정치기구로서 완비되었다.
문화면으로는 유교보다 불교 ·도교(道敎)가 성하였다. 불교는 남조에서 불법존숭의 황제까지 나타났고, 북조에서는 국가불교적인 성격이 강하여 윈강[雲崗]·룽먼[龍門]석굴과 마이지산[麥積山]석굴 등과 같은 대대적인 조불사업(造佛事業)이 성행하였다. 도교는 남조에서는 양의 도홍경(陶弘景)에 의해서 대성되었고, 북조에서는 북위 태무제 때의 도사(道士) 구겸지(寇謙之)가 천사도(天師道)를 대성하고 국가본위의 도교 종파를 이루어 중국 도교를 종교로서 확립되게 하였다.
문학은 남조에서는 진(晉)에서 송(宋)에 걸쳐 도연명(陶淵明)과 사영운(謝靈運) 등이 나타났으며, 그 경향은 귀족사회의 풍조를 반영하여 화려한 수사를 중용한 사륙변려체(四六폿儷體) 문장이 널리 보급되었다. 양나라 소명태자(昭明太子)의 《문선(文選)》과 서릉(徐陵)의 《옥대신영(玉臺新詠)》은 그와 같은 경향을 바탕으로 하여 편찬된 시문집(詩文集)이다. 이 같은 귀족적인 경향에 대하여 생생한 민간의 감정을 표현한 악부(樂府)가 있었는데, 남조의 악부는 연애감정을 노래한 것이 많았고 북조의 악부는 전쟁과 영웅을 노래한 용맹하고 웅장한 것이 많았다. 이 밖에 문학작품이 아닌 것으로, 북위의 여도원(自道元)의 《수경주(水經注)》와 양현지(羊衒之)의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가사협(賈思陣)의 《제민요술(齊民要術)》, 안지추(顔之推)의 《안자가훈(顔子家訓)》 등이 주목받을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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